[기고] 세종대왕의 리더십이 필요하다/오기수 김포대 세무회계정보과 교수

[기고] 세종대왕의 리더십이 필요하다/오기수 김포대 세무회계정보과 교수

오기수 김포대 세무회계정보과 교수

▲ 오기수 김포대 세무회계정보과 교수



조선시대 세종대왕의 리더십은 조세정책에서 잘 나타난다. 조선시대에 조세는 쌀·보리 등 현물로 징수했기 때문에 먹을 것이 항상 부족했던 백성에게 조세는 고통이었다. 더욱이 관리들의 조세 비리는 백성의 삶을 앗아갈 정도로 심각했다. 그래서 세종대왕은 관리들이 부정부패를 저지를 수 없는 공평한 조세제도를 세우고자 공법(貢法)을 입법했다.

세종은 서두르지 않았다. 공법을 세우기 위해 즉위하면서부터 혼신을 다했지만 완성하기까지 무려 25년이나 걸렸다. 왕권이 약해서가 아니라 정치의 주체세력인 양반관리들과 조세를 부담하는 백성들 모두가 만족하는 공법을 만들고자 했기 때문이다. 오직 ‘백성을 위한 세법’을 세우기 위해 군왕의 힘을 접어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보여준 세종의 리더십이 바로 지금 우리 정치에 필요하다.

첫째, 백성의 뜻을 민주적으로 반영했다. 군주시대에 민주적이란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세종은 지금보다 더 민주적으로 공법을 제정했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세종 9년 과거시험에 공법 문제를 내 젊은 유생들의 생각을 들었고, 세종 12년에는 정치에 참여할 수 없는 일반 백성들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실시해 민심을 살폈다. 이어 세종 20년에는 공법을 삼남지역에 시범적으로 실시해 문제점을 파악했다.

둘째, 공법 시행에 반대한 황희 정승과 끝까지 함께했다. 황희는 “우리 조선이 개국한 이래 조세를 거둘 적에 답험손실법을 제정하니, 이는 실로 고금을 참작하여 만대라도 시행할 만한 좋은 법인지라 경솔히 고칠 수 없는 것입니다”라고 주장하며 공법에 일관되게 반대했다. 하지만 세종은 황희의 반대의견을 내치지 않고 수용하면서 더 좋은 공법안을 제안하도록 했다.

셋째, 세종은 처음부터 확정적인 공법안을 제시하지 않았다. 대신 황희 정승을 비롯한 대신들에게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공법안을 제안할 것을 명하고 기다렸다.

넷째, 최종 단계에서는 리더의 결정력을 보여줬다. 25년 동안 공법에 대한 여론을 수렴하고, 대신들과 논의하였지만 결론이 나질 않았다. 오죽하면 공법의 완성을 1년 앞둔 시점에서 “근일에는 공법을 시행하고자 하나 모든 신민(臣民)들이 또 모두 불가하다 하므로, 내가 상세하고 명확하게 설득하였으나 아직도 오히려 깨닫지 못하니 공법의 시행을 정지하고자 한다”고 불편한 심기를 보였다. 하지만 3개월 뒤 세종은 25년 만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경무법에 따른 전분5등법과 연분9등법의 공법안을 제안했다.

다섯째, 타협과 양보로 공법을 마무리했다. 세종은 25년 만에 처음으로 내놓은 공법안에 예상대로 대신들이 들고 일어나자 타협안으로 전분6등법과 연분9등법을 내놓으며 양보, 대신들이 모두 찬성했다. 그 결과 세종 26년에 최종 공법이 완성됐다.

이처럼 백성의 뜻을 반영하고 대화와 타협의 리더십을 발휘하여 25년에 걸쳐 공법을 입법하였기에, 이 공법은 경국대전에 수록되어 조선의 근간 세법으로 조선 말까지 약 450년간 시행된 것이다. 지금의 우리 정치에도 이러한 세종대왕의 리더십이 발휘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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