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취약지역 ‘범죄예방 환경 조성’ 더 확대해야
‘스파이더맨’은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 중 하나다. 마블사의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스파이더맨은 뜻하지 않게 거미에게 물리면서 거미의 능력을 갖게 된 후 악당을 물리치는 영웅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파트 배관을 오르내리며 금품을 터는 절도범들을 칭할 때 사용한다. 같은 능력이라도 활용 면에서는 엄연히 달라 원조 스파이더맨은 좀 억울하겠다.
국토교통부는 공동주택이나 단독주택, 문화 및 집회시설 등과 같이 다양한 건축물에서 발생하는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지난해 11월부터 건축물 용도별 내·외부 설계 기준을 제시하고 의무 적용하도록 하고 있다. 예를 들면, 공동주택에서는 사람이 타고 오를 수 없도록 덮개나 침입방지 장치를 부착한 배관을 도로나 보행로, 인접 가구에서 조망이 가능한 방향에 설치하도록 하고 있다. 이제 스파이더맨은 뉴스가 아닌 영화에서만 볼 수 있으려나.
그런데 500가구 미만 아파트단지나 다세대·연립·단독 주택은 의무사항이 아니란다. 단지 기준의 적용을 권장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단독·다세대 주택이 밀집한 지역은 대부분 좁은 골목, 낡은 담장, 폐쇄회로(CC)TV 및 야간 조명의 부족으로 범죄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정작 범죄예방이 절실한 대상은 배제된 듯하다.
특히 노후화된 주거밀집지역에는 다양한 범죄 취약 요소가 존재한다. 하지만 이번 기준 제정이 신축 건물에만 국한되어 있어 아쉽다. 미국이나 영국 등은 주거취약지역의 범죄 예방을 위해 1970년대부터 범죄예방 환경 디자인인 ‘셉테드’를 도입해 큰 효과를 거두고 있다. 셉테드는 조명 개선, 휴게공간 배치, 보행자 중심 도로폭 조절 등으로 취약한 환경을 개선해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다. 실제로 미국은 41개 지역의 조명을 개선하는 것만으로도 범죄 불안감 해소 및 예방 효과를 거두었다. 영국은 중앙정부 주도로 방범인증제도(SBD)를 시행해 이를 도입한 주택지구의 주거침입 절도나 차량범죄율이 인근 지역에 비해 크게 낮아졌다.
우리나라는 최근에야 경기 안양시와 고양시, 충남 천안 등의 다세대주택 및 원룸 밀집지역을 대상으로 셉테드를 적용한 범죄예방 환경 디자인사업을 시범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다. 이 시도가 지속되어 신축 건물뿐만 아니라 다양한 주거취약지역도 범죄 가능 요소를 최소화할 수 있다면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주민, 시·도, 국가가 모두 참여해 안전한 범죄예방 환경 조성에 노력해야 할 것이다. 주거환경이 안전해야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 그리고 국민이 행복해야, 행복한 나라다.